AI를 피하려고 선택한 직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업을 포기하게 만든 것도 AI였고, 결국 저를 AI를 다루는 사람으로 만든 것도 AI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이상한 역설에 관한 것입니다.
대학 대신 동대문을 선택했습니다
강남 8학군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주변에서는 당연하다는 듯 대학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대학 대신 바로 취업이었습니다.
처음 일한 곳은 동대문이었는데, 새벽부터 시작하는 일이었고 몸이 먼저 지치는 환경이었습니다. 쉬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때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배웠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꽤 큰 자산이었는데, 당시에는 그냥 버티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군입대를 했고, 전역 후에는 카페에서 3년을 일했습니다. 딱히 방향이 있는 건 아니었고, 뭔가를 결정해야 한다는 막연한 압박은 있었습니다.
AI가 대체하지 못할 직업을 찾았습니다
2017년쯤, AI 이야기가 슬슬 대중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뉴스에서도 나오고, 유튜브에서도 나오고, “이러다 다 대체된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렸습니다.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20년, 30년 후에도 살아남을 직업이 뭔지.
결론은 항공정비사였습니다. 논리가 있었습니다. 항공기 정비를 마치고 서명을 하는 사람은 그 서명에 책임을 집니다. 사고가 나면 법적 책임도 따라옵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 책임 구조를 대신 질 수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는데, 어린 시절 받았던 사교육 덕분인지 메커니즘을 외우기보다 이해하는 방식으로 사고하는 게 이미 체득화되어 있었고, 그래서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항공정비산업기사 자격증과 면장, 그리고 토익까지 챙겼습니다. 공채 지원 준비가 거의 다 됐다는 생각이 들던 참이었습니다.
공채를 내려던 날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코로나가 터지면서 항공사 공채가 전면 중단됐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리겠지 했는데 1년이 지나도 열리지 않았습니다. 2년 가까이 그 상태였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는데, 어느 순간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한마디가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습니다. “AI를 피할 게 아니라, AI를 다루는 사람이 돼라.”
짧은 말이었는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AI를 피하려고 직업을 선택한 사람한테 AI를 다루라는 말이었으니까요. 잠깐 멍해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그 말이 맞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결심하고 개발 회사에 지원했습니다.
Hello World도 모른 채 앱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입사 전에 파이썬 책 한 권을 주말 동안 읽어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읽기는 했는데, Hello World가 뭔지 인쇄된 글자로만 알던 수준이었습니다. 첫 출근을 했고, 그날 바로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스마트폰 앱 만들어봐요.”
잠깐 멍했습니다. 구글링을 해봤는데 용어가 낯설어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ChatGPT를 켰습니다. 당시엔 주변에서 잘 쓰지 않던 시기였는데, 그냥 무턱대고 물었습니다. “이런 앱 만들려는데 어떻게 시작하면 돼요?”
ChatGPT가 리액트 네이티브와 엑스포를 추천했습니다. 3D 렌더링에 서버 통신, 드래그와 확대/축소 이벤트까지 들어가야 하는 앱이었는데, ChatGPT가 코드를 뱉어줬습니다. 그런데 그 코드가 왜 그런지 이해가 안 되면 다음 단계로 못 가는 타입이라, 코드를 한 줄씩 설명해달라고 계속 물었습니다.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app.js 하나짜리 파일에 코드가 8만 줄이었습니다. 돌아가질 않았습니다. 일주일을 씨름했는데, 어느 날 인터넷에서 모듈화라는 개념을 발견했습니다. 8만 줄을 하나하나 찢어서 나눴습니다. 3주 만에 진짜로 구동되는 앱이 완성됐습니다.
그 순간 확신이 생겼습니다
앱이 처음 실행되던 그 순간, 뭔가 확 바뀌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앱 하나 완성한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습니다. AI가 10년 안에 모든 걸 뒤집을 거라는 확신이 그 순간 생겼습니다. 근거 없는 감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보면서 느낀 것이었습니다.
다른 개발자들이 구글링을 할 때, 저는 ChatGPT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물어야 원하는 답이 나오는지, 어떻게 쪼개서 물어야 코드를 이해하면서 따라갈 수 있는지를 몸으로 익혔습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는 말도 몰랐던 때였는데, 그냥 그게 그거였습니다.
AI를 피하려던 사람이 AI를 가장 먼저 붙잡은 사람이 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지금 저한테 가장 큰 무기가 됐습니다.
//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