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글체를 학습시키는 건 재료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했는데, 정작 제 글체를 만들려고 하니 참고할 만한 글 자체가 없다는 게 문제였습니다. 이 역설이 AI 페르소나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놨습니다.


남의 글체를 학습시키는 건 쉬웠습니다

여자친구 블로그의 글체를 AI에 먹이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기존 글에서 자주 쓰는 어휘와 문맥, 문체를 뽑아서 학습시키면 됐기 때문에 재료만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처음에는 Grok에 직접 붙여넣기 방식으로 시작했고 잘 작동했는데, 문제는 컨텍스트가 쌓이면서 생겼습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앞에 넣어뒀던 글체 정보를 슬슬 잊기 시작하면서, 처음엔 잘 따라오다가 나중엔 평범한 AI 글투로 돌아가는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이건 Grok 프로젝트 기능으로 해결했는데, 프로젝트에 글체 정보를 고정해두고 API로 호출하는 방식으로 바꾸고 나서는 안정적으로 유지됐습니다. 글이 있으면 학습시킬 재료가 있고, 재료가 있으면 방법은 결국 찾게 됩니다.


내 글체는 재료 자체가 없었습니다

막상 제 페르소나를 만들려고 앉으니 막막했는데, 여자친구한테 했던 방식 그대로라면 기존 글을 참고하면 됐지만 그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 블로그를 한 번도 쓴 적이 없었으니까요.

AI에 학습시키려면 텍스트가 있어야 하는데 제 글 자체가 없었고, “나는 어떻게 글 쓰는 사람인가”를 텍스트로 설명해야 하는 상황인데 그 설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셀프 인터뷰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정답을 주려는 접근 자체가 잘못됐다는 걸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A/B/C/D/E — 정답을 주지 않는 방법

결국 방향을 바꿔서, 정답을 주려는 시도를 아예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프롬프트를 자유롭게 열어두고 5가지 아웃풋을 요청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는데, A부터 E까지 다섯 버전을 전부 다른 방향으로 써달라고 하면서 그걸 읽으며 “이건 맞다, 이건 아니다”를 피드백하는 과정을 반복했습니다.

정답을 주면 AI는 그냥 고분고분하게 따라오기만 하기 때문에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오지 않는데, AI의 자율성을 살려야 순기능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명시하지 않은 방향에서 “이게 더 낫다” 싶은 표현이 나올 때가 있었고, 그런 가능성은 프롬프트를 열어둬야만 포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다듬는 중입니다

“이거다” 싶은 순간이 없지는 않았는데, 가끔 글을 읽다가 “이 문장은 내가 썼다고 해도 믿겠다”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완성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자율성을 빼면 AI 순기능을 잃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꽉 조이면 안전하게 따라오는 대신 예상 밖의 결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항상 자율성은 유지하면서 피드백만 계속 써나가고 있습니다.


구현은 누구나 합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에이전트로 코드를 짜는 건 이제 진입장벽이 낮아져서, 프롬프트 몇 줄이면 작동하는 뭔가가 나오는 시대가 됐고, 구현 자체는 누구나 하게 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게 쓸 만한지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개개인의 취향과 맥락에 맞게 에이전트를 학습시키는 과정이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AI가 나를 대신해서 무언가를 하게 만들려면 AI가 나를 알아야 하는데, 그 과정은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라기보다 일종의 관계 맺기에 더 가깝습니다.

이 블로그가 다루려는 것도 바로 그겁니다.


아직 다 못 만들었고, 아마 계속 그럴 것 같습니다.